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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해랑

늘해랑 01

늘 해와 함께 살아가는 밝고 강한 사람

본 포타는 100% 허구입니다.

각주는 글 하단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17세기 중반, 왕은 재위 15년 만에 귀한 원자를 얻었고, 그 원자의 이름을 대답할 유, 참 진이라 칭하니 앞으로 이 나라 조선의 하늘이 될 원자*로 책봉하다.




정확히 1년 뒤, 3대 정승 중에 한명이었던 영의정의 집 안채에서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리니, 영의정은 그토록 기다리던 어여쁜 딸을 얻었다. 인원 원, 옥빛 영 자를 따서 원영이라 이름 짓고 온갖 사랑을 받으며 곱게 자라다.


원자가 11살이 되고 본격적으로 스승들과 글공부를 시작하자 중전은 원자의 배동*을 만들기를 왕에게 청한다. 마침 왕도 혼자 공부하는 원자가 안쓰러웠던지 사대부 집안 자식들 중에 원자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아이들의 추천을 부탁했고, 마침 한 살 차이 나는 영의정의 딸이 적극 추천되어 배동으로 부름을 받는다.




"장제공의 차녀 장원영 중전마마께 문안 올립니다"


중전의 앞에 다소곳하게 절을 올리는 10살 아이는 전혀 그 또래 같지 않았다. 다소곳하고 치마를 풀풀 거리 지도 않았으며 윗사람이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는 눈을 먼저 맞추는 법도 없었다. 

만족스런 미소를 보이는 중전은 아이에게 하명했다.


"고개를 들어 나를 보렴"


중전의 명에 아이는 고개를 들어 눈을 맞췄고, 아이의 얼굴을 마주한 중전은 만연에 미소를 띄며 당장 내일부터 성정각*으로 오라는 명을 내렸다. 곱게 인사를 올리고 자리에서 나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의 손을 잡은 원영은 내일부터 중전마마가 나오라고 하셨다며 함박웃음을 띄고 말했다.


"원영아, 궁이 그리 좋으냐"

"네 어머니, 물론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사는 우리 집도 좋지만 궁도 좋은 거 같아요. 성군이신 주상전하도 계시고 인자하신 중전마마도 계시고, 또 내일부터 저와 함께 공부하실 원자 아기씨도 계시니까요"


원영의 야무진 대답에 어머니는 미소 지으며 머리를 쓰다듬었고, 편전*에 계신 아버지를 잠깐 뵙고 올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며 원영을 남겨두고 몸종에게 옆에 잘 있으라고 신신당부를 한 뒤 홀로 편전으로 향했다.


남겨진 원영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은 궁 안의 못중에 한 곳인 향원정*이었고 생전 처음 보는 아름다운 모습에 그 조그만 발을 움직여 연못을 구경하며 종종걸음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못을 구경하며 앞을 보지 못하고 걷고 있을 즈음, 갑자기 어딘가에 부딪힌 원영의 머리엔 별이 생겼고, 놀라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엄하구나! 어느 안전이라고!"


큰 소리에 놀란 원영이 정신을 차리고 위를 올려다본 곳엔 행여나 얼굴이 탈까 봐 양산을 쓰고 옥으로 된 노리개를 차고 청색 치마에 금색 저고리를 입은 제 또래로 보이는 여인이 서 있었다.


"어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지 못할까"


그 여인의 몸종으로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를 내며 원영을 나무랐고, 그 여인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원영을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었다.

오기가 생긴 원영은 엉덩이를 툭툭 털고 일어나 대답했다.


"제가 먼저 부딪힌 건 맞지만 여인께서도 앞을 보지 않으신 건 마찬가지 아니신지요"

"뭐야? 이 분이 어떤 분인줄ㅇ..."

"그만하거라"


옆에 있던 몸종이 또 꾸짖으려고 하자 여인이 손을 들어 말렸고 덩치 큰 몸종이 한마디도 못 하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러니까, 지금 네가 잘못한 게 없다?"

"아닙니다. 저도 잘못을 했지만 여인께서도 잘못을 하셨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한마디도 지지 않고 또박또박 말대꾸를 하는 원영과 눈을 마주치고 물끄러미 바라보던 여인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고 말했다.


"그래, 미안하다. 내가 다른 곳에 한눈을 파느라 네가 풀풀 대며 뛰어오는 것을 보지 못했구나, 이제 됐느냐"

"소녀도 앞을 보지 못하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죄송합니다"


여인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사과하자 원영도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고, 이제 볼일이 없다는 듯이 자리를 뜨려 하였다. 하지만 여인이 원영의 손을 잡아 돌렸고 원영은 얼떨결에 다시 마주 보게 되었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제 이름은 왜 물으십니까? 그러고 왜 자꾸 아까부터 반말이십니까?"

"뭐라?"


원영의 당돌한 말에 결국 그 여인은 크게 웃어버렸고 그 웃음에 원영의 얼굴을 더욱더 구겨지고 있었다.


"네 나이가 올해 몇이냐"

"....10살입니다"

"허면, 내가 너보다 연장자니 반말을 한 것이 잘못은 아니구나"


여인의 말에 원영이 움찔했고, 입을 삐죽거리더니 묵례를 하고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여인이 다시 손목을 잡아서 본인을 보게 만들었다.


"이름이 무엇이냐 물었다"

"....원영입니다. 장원영"


원영의 대답을 들은 여인은 몇번이나 이름을 곱씹는 듯하더니 손목을 놓아주었고 이제 가라며 인사까지 해주었다. 묵례만 까딱하고 그 자리를 벗어난 원영은 씩씩대며 어머니가 가신다고 한 편전으로 향했다.


"뭐 저런 경우 없는 사람이 다 있어! 보아하니 배운 대로 배운 것 같은데! 에이!"


괜히 신고 있던 꽃신 앞에 걸리적거리는 돌멩이 하나를 힘껏 차며 화풀이를 했다. 에이 짜증 나, 다시 마주칠 일 없겠지! 하고 편전에서 나오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원영은 집으로 향했다.









다음날 아침, 원영은 그 어느 때보다 분주했다. 


아침 세안을 마치고 가장 고운 비단옷을 꺼내어 입었다. 그리고 댕기를 땋아주는 어머니의 손길에 머리를 맡겼다. 


"우리 원영이, 잘 하겠지만 원자 아기씨 마음 불편하게 하지 말고, 같이 글공부하고 하자고 하시는 놀이 같이하고 오면 된다, 알겠지?"

"네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원영은 나이 같지 않은 성숙함으로 부모님을 안심시켰고 궁에서 중전이 보내준 꽃가마를 타고 궁으로 향했다. 뒤뚱뒤뚱 궁으로 향하는 마차 안, 마차에 있는 조그마한 창문을 열고 내다본 밖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눈부셨다.

봄이라서 그런지, 어딘가에서 날아온 꽃잎도 흩날리고 있었고 공기마저 따뜻해서 원영은 어쩐지 더 들뜬 느낌이었다. 




"중전마마, 배동 아이 도착했습니다"

"아 들라고 하세요"


중전의 교태전에 들어와서 상궁으로 보이는 사람이 원영의 도착을 알리자 중전의 허락이 떨어졌고, 원영은 어제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들어갔다. 


"아, 왔구나, 오늘은 어제보다 더 곱구나"

"황송합니다 마마"


원영이 들어간 자리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고, 그 앞엔 중전이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원자 아기씨로 보이는 사람이 원영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향원정에서 마주친 그 여인이었다.






원영의 눈앞이 하얘졌다. 손이 벌벌 떨리며 중전이 권한 귀한 차도 마시지를 못했다. 걱정된 중전이 어디가 안 좋냐고 물었고, 원영은 겨우 고개를 흔들며 아니라고, 처음 원자 아기씨를 만나서 긴장하는 것이라고 겨우 둘러댔다.


"어마마마, 소인 이제 이 배동 아이와 단 둘이 있고 싶습니다"

"아, 그래요 원자, 그게 좋겠어요"


유진은 긴장한 원영을 보고 장난끼 가득한 미소를 짓더니 중전에게 단 둘이 있고 싶다고 말했고, 중전을 웃으며 그를 허락해주었다. 

아, 나 이제 죽는구나, 아 궁에서 쫓겨나는 건가, 우리 아버지께 안 좋은 일 있으면 어쩌지, 나 옥에 갇히는 건가!! 갖은 걱정을 하던 원영을 데리고 교태전에서 나온 유진은 의외로 뒷짐을 진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걷기만 했다.

그 많던 나인들이 안보이던 한적한 궁 뒷골목에 접어들자 유진이 갑자기 우뚝 멈춰서서 원영은 뒤통수에 코를 부딪힐뻔했다.


"장원영이라고 했지?"

"네 아기씨"


그리고 뒤를 돌아보며 눈이 마주친 유진의 표정은 재밌는 놀잇감을 발견한 아이의 표정, 그 자체였다. 원영의 눈을 마주친 채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숨소리도 들릴 것 같은 거리를 만들더니 유진이 표정을 바꾸고 말했다.


"너, 어제 나한테 잘못한 건 알고 있지?"

"네? 네, 알고 있습니다"


아, 역시 왜 말을 안 꺼내나 했다. 원영은 두 눈을 감고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고 유진은 눈을 감고 있는 원영의 양쪽 어깨를 잡고 털어주더니 밝게 웃으며 말했다.


"원영아, 너무 그러지마, 내가 너 잡아먹을 것 같잖아"

"그, 그럼 소녀를 용서해 주시는 겁니까..?"

"음, 그러면 나도 조건이 있어야겠지?"


원영은 마른침을 삼키며 장난끼 가득 찬 유진의 얼굴을 보고 있었고 유진은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원영의 손을 잡고 어딘가로 데리고 가기 시작했다.


"어, 어디를 가시는 건가요?"

"따라와 봐"


유진은 오직 원영의 손만 잡고 빠른 걸음으로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따라오던 상궁과 나인들에게 일각*의 시간 뒤에 자신을 데리러 오라고 이른 뒤 성정각으로 향했다. 


"아기씨, 여기는..?"

"내일부터 너랑 나랑 공부할 곳"


원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성정각안의 서책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그런 원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유진은 아무 말을 하지 않다가 원영이 잘 보이는 의자에 거꾸로 자리 잡고 앉아 턱을 괴고 원영을 바라봤다.


"근데 원영아"

"네"

"넌 지금까지 궁 밖에서 살았으니까 이곳저곳 많이 가봤겠네?"


원영은 유진의 질문에 들고 있던 서책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유진의 옆에 있던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다소곳하게 손을 모으고 유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네, 그렇긴 했죠"

"음, 그럼 내가 원하는 날마다 나랑 몰래 궁 밖에 같이 나가자"

"네..?"


유진의 말에 원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랬다간 원자를 옆에서 잘 못 모셨다는 명분으로 본인이 화를 입을 지도 모른다. 놀란 원영이 대답을 못하고 눈만 끔뻑거리고 있자 유진이 원영 쪽으로 몸을 돌리고 조르기 시작했다.


"아, 원영아아 한번마안, 응? 나 밖에 나가보고 싶단 말이야, 아바마마랑 어마마마랑 같이 나가면 자유롭게 구경도 못하고 백성들에게 인사만 하고 와야 해... 이런 내가 안 불쌍해?"

"네, 안 불쌍해요"

"뭐?"


원영이 당돌하게 대답하자 유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상체를 일으켰고, 원영은 속으로 이런 사람이 나보다 한살이나 많고, 앞으로 이 나라를 짊어질 원자라니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당연히 안된다는 표정으로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어제 네가 나한테 했던 잘못은 용서 안 해줄 건데?"

"그건..!"


할말이 없었던 원영이 입을 다물었다. 유진은 그제야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원영의 손을 잡더니 다시 조르기 시작했다.



"한 번만, 원영아 나 밖에 나가서 저잣거리 구경도 하고 싶고 백성들 진짜 사는 모습도 구경하고 싶단 말이야"



원영은 두 눈을 꼭 감았다. 원자 아기씨와 부딪혀서 사과도 안 하고 박박 우긴걸 윗분들이 알게 되면 배동 자리는 커녕 아버지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른다. 원영은 한숨을 푹 쉬더니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진짜지? 약속했다!!"


유진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지고 좋다며 원영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격하게 흔들어댔다. 이럴 때 보면 영락없는 제 또래 같은데, 이런 사람이 원자라니, 좀 못 미더웠다. 


"근데 어떻게 나가실 건데요?"

"길은 다 있지, 걱정하지 마"



이미 계획이 있다는 표정으로 웃는 유진을 바라보던 원영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한 번의 잠행으로 그 잘 못을 없던 일로 할 수 있다면 위험을 감수해보기로 했다. 

그날은 원자의 스승들에게 원영의 얼굴만 익히는 시간을 가졌다. 

스승들의 몇 가지 질문에 원영은 막힘없이 차분하게 대답했고 스승들은 이 정도면 원자의 배동으로 손색이 없다며 매우 흡족해했다. 유진은 옆에서 그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가 자리가 끝나자마자 원영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왜 그러세요 아기씨 어디 불편하세요?"

"저런 재미없는 노인네들이랑 있는 게 세상에서 제일 지루해"


유진의 말에 원영은 영문도 모르고 손을 잡힌 채 알 수 없는 곳으로 끌려갔다. 도착한 곳의 현판엔 악기조성청*이라고 쓰여있었고, 유진은 익숙한 듯 그 곳으로 발을 들였다. 원영은 생전 처음 오는 곳에 신기한 구경거리가 많아 유진의 손에 의해 잡혀가는 줄도 모르고 두리번거리느라 바빴다.


"원자 아기씨 오셨습니까"


유진의 등장에 그곳의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이 얼른 일어나 유진에게 인사를 건넸다. 유진은 익숙한 듯 인사를 받고 오늘은 어떤 악기가 있냐고 물었고 그 관리는 마침 아기씨께서 좋아하시는 거문고가 새로 만들어진 게 있다며 들고 유진과 원영의 앞으로 나왔다.


"오오, 새로운 거야? 보여줘"


유진의 보여달라는 이야기에 관리가 익숙한 듯 연주를 시작했고, 이윽고 원영의 귀에도 익숙한 장단이 연주되기 시작했다. 원영이 익숙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연주를 들고 있자, 유진이 놀란 듯 원영을 보며 알고 있는 곡조냐고 물었고 원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아버지가 기분이 좋으실 때마다 사랑방 문을 열어놓으시고 연주를 해주세요"


유진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원영을 바라보고 말했고 원영은 어쩐지 쑥스러워져서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유진도 다시 고개를 돌려 연주하는 관리의 손을 바라보았고, 연주를 듣고 있던 유진의 얼굴을 몰래 훔쳐보던 원영은 유진의 처음 보는 진지한 모습에 속으로 조금 놀라며 함께 연주를 들었다. 

연주가 끝나자 유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관리에게 또 놀러 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원영의 손을 잡는 것도 잊지 않고 나왔다. 


"아기씨는 음률 고르는 것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 보여? 하긴, 궁은 너무 재미가 없거든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는 늘 글공부만 하라고 하시고 노인네들은 구닥다리 같은 이야기만 하고 내관이랑 상궁들은 위엄을 지키라는 말만 하고 답답해 죽겠어, 근데 여기 오면 숨통이 좀 트인다?"


여기까지 들은 원영은 유진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 비슷한 또래인데 본인은 서책은 물론이고 아버지와 어머니의 허락하에 해보고 싶은 것은 다 하고 자랐기 때문에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순간 유진이 좀 불쌍해진 원영이 측은한 표정으로 바라봤고, 자신을 보고 있던 유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짧은 정적


"아 몰라, 됐고 내일 나랑 여기 빠져나가서 뭘 할지나 생각해"


괜히 민망했던지 유진이 말을 돌렸고, 원영은 또 괜히 그런다며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은 그렇게 서책 한 번도 거들떠보지 않고 하루가 지났고 원영은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일찌감치 마중 나와 즐겁게 지냈냐고 물어보았고 원영은 운 좋게 악기연주까지 들었다며 어머니를 안심시켜드렸다.


첫날에 긴장해서 고단했는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든 원영은 내일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고민하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다음날, 일찌감치 궁으로 향한 원영은 내관의 안내에 따라 유진의 처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엔 치마저고리를 벗어던지고 도령의 옷을 입고 있는 유진이 우두커니 앉아 원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아기씨 왜 옷이...?"

"치마 걸리적거려"


그러고 원영의 복장을 위아래로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약간 민망해진 원영은 자신의 고운 담홍색*치마를 애써 손으로 가린다고 가려보았다. 유진은 고개만 갸웃거리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할 수 없지, 내가 먼저 넘어가서 손 잡아줄 테니까 조심히 넘어와 치마 걸리면 다친다"

"네..?"


어딜넘어가? 영문을 모르던 원영은 유진이 이끄는 곳으로 조용하게 끌려갔다. 어떻게 알았는지 기가 막히게 내관들의 교대 시간에 방에서 나온 둘은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처소에서 나올 수 있었고 유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또 원영의 손을 잡고 냅다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걷다가 도착한 곳은 인적이 없는 어느 뒷골목이었다. 거기는 다른 곳보다 담이 낮았고 누가 미리 깔아놓은 건지 모르겠지만 튼튼한 널빤지가 담장을 향해 놓여있었다.

유진은 다시 널빤지를 점검하듯 발로 꾹꾹 눌러보더니 원영을 돌아보고 이야기했다.


"내가 먼저 넘어가 있을 테니까 밖에서 이름 부르면 천천히 넘어와, 치마 걸리니까 조심하고"


야무지게 말을 남기고 유진은 흣챠! 소리를 내며 담장 밖으로 쉽게 넘어갔다. 그리고 얼른 넘어오라는 작지만 분명한 유진의 목소리에 원영은 마른침을 삼키고 치마를 양손으로 잡은 채 널빤지를 조심조심 올라가기 시작했다.

원영이 담장 꼭대기에 도착했을 때, 아래서 올려다보고 있던 유진과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널빤지가 살짝 삐끗하고 옆으로 떨어지며 원영이 앞으로 고꾸라졌고 아래에서 올려다보고 있던 유진의 바로 위로 떨어지게 되었다.


"으악!!"

"꺅!"


둘 다 한동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앓다가 먼저 정신을 차린 원영의 얼른 유진의 위에서 일어섰고 유진은 머리를 붙잡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주저앉았다. 


"아우, 원영아 괜찮아?"


유진이 먼저 원영에게 괜찮냐고 물었고 원영은 얼굴이 시뻘게져서 괜찮다고 고개만 연신 끄덕거렸다. 다행이라며 자리에서 일어선 유진은 놀라서 그대로 주저앉아있는 원영을 일으켜 세워주고 고운 치마에 묻어있던 흙먼지를 털어주었다. 


"너 다치면 나 어마마마한테 혼나, 또 얼마나 아랫사람 괴롭혔냐고 하실 거란 말이야"

"아기씨 다치시면 저도 혼나요..."

"나는 뭐, 내가 뜀박질하다가 다쳤다고 해도 믿으실걸? 워낙 많이 그러고 다녀서"


처음으로 유진이 원영을 향해 거짓 없이 웃어줬고, 원영은 아아 그렇구나 하고 대답만 하고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원영의 옷을 다 털어준 유진이 자신의 옷매무새도 정리했고 시간이 없다며 원영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도착한 도성 안 저잣거리에서는 마침 장이 열려 시끌벅적했다. 엿장수에게 엿을 구매해서 하나씩 사 먹어보기도 했고 예쁜 노리개도 구경하기 바빴다. 그리고 마침 들리는 시끄러운 풍악 소리에 유진은 옆에서 비단을 구경하고 있던 원영의 손을 잡고 홀린 듯이 소리가 들리는 저잣거리의 중심부로 향했다.


거기엔 광대들이 판을 벌리고 큰소리로 외줄 타기도 하며 창도 하고 갖가지 구경거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악기와 음률을 좋아하는 유진이 이 자리를 지나칠 리가 없었다. 맨 앞자리로 원영의 손을 잡고 들어간 유진은 자리를 잡고 앉아 그들의 춤과 악기연주를 지켜보았다. 


내용은 역시, 양반들을 비판하는 풍자가 섞인 내용이었다. 이를 못 알아볼 리가 없는 유진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원영은 그런 유진의 눈치를 보기 바빴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뜨고 싶은 표정의 유진을 바라보던 원영은 잡고 있던 유진의 손을 진정하라며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극이 끝나고, 볼쾌했지만 그래도 잘 보았다며 박에 엽전 2냥을 던져준 유진은 그래도 여전히 불쾌한 얼굴로 그 자리를 떴다. 괜히 원영이 옆에서 눈치를 보느라 바빴고, 겨우겨우 입을 열었다.


"아기씨, 불쾌하셨지요..?"

"조금?"

"그냥 백성들의 삶의 고단함이 녹아 있다고 생각해주세요. 없는 곳에선 나라님 욕도 한다고 하잖아요"


원영의 말에 유진은 말없이 고개만 끄덕거렸고 한참을 말 없이 걷더니 다시 자리에 우뚝 멈춰서 말을 이어갔다. 


"정말 우리가 잘못한 건가? 우리가 잘못해서 백성들이 어렵게 사는 걸까?"

"...."

"이런 건 노인네들에게 물어봐도 대답 안 해줘"


유진의 질문에 원영이 대답을 못하자 유진은 몸을 돌려 원영과 마주 보았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정말 왕실이 무능해서 백성들이 힘든 걸까?"

"....그걸 깨달으셨다면 앞으로 성군이 되셔서 바꿔놓으시면 됩니다. 이 나라의 하늘이 되실 운명이시니까요"


원영의 대답에 유진은 만족한 듯 웃더니 해가 곧 질 것 같다며 얼른 궁으로 돌아가자고 재촉하며 당연한 듯이 원영의 손을 잡았다. 










각주

원자 - 왕조 국가에서 원자(元子)는 국왕과 왕비 사이에 낳은 맏아들을 지칭하며, 그가 차기 왕위계승자인 세자(世子)에 책봉된다.

배동 - 모시는 아이라는 뜻으로3-5살에 선발하여 궁으로 입궐, 세자와 함께 교육을 받고 놀이를 하게 하는 친구

성정각 - 세자가 공부를 하는 곳 

편전 - 왕의 공식적 집무실로, 왕이 공부도 하고 신하들과 회의도 나누던 곳

향원정 -  조선시대의 2층 육각 목조 정자이다. 경복궁 북쪽 후원에 있는 향원지 내의 가운데 섬 위에 건립되었다.

일각 - 15분

악기조성청 - 조선 후기 악기제작에 관한 업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임시로 설치하였던 관청.

담홍색 - 지금의 분홍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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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개의 댓글

deana526
내가 보고싶은 걸 씀
에서 고정함

사극 진짜 너무 좋아요ㅠㅠ🥹

내가 보고싶은 걸 씀
에서 고정함

흙먼지 쓴 말썽쟁이가 어떻게 자랄지 궁금해집니다

내가 보고싶은 걸 씀
에서 고정함

사극 드라마 첫 화를 본 것 같아요... 흐어 유진이가 광대극을 보고 고심하는 것이 성군이 될 재목으로 보이기도, 폭군이 될 단초로도 보여서 다음이 너무 궁금합니다... 어떻든 원영이가 옆에서 받쳐주면서 잡아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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